장혜정

 

… Shattering …, Project Space SARUBIA

심층비평

 현재의 몸이 과거로 하여금 미래를 말하게 하는 일_조은영의 작업에 부쳐

 

하나의 몸은 태평양을 한번, 두 번, 여러 번 건넜다. 그 와중에서 그 몸의 고유한 언어는 연거푸 훼손되었다. 굳이 하이데거의 “언어는 존재의 집, 언어는 인간의 사유와 사고를 지배한다.”는 말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말과 몸의 각별한 관계에 대해서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종종 망각한다. 말은 몸과 분리될 수 없다. 언어는 문화이며, 문화는 개인의 고유한 시간과 사상의 모임이자 체화이고 체현이며, 이것은 다시 말이 되고 글이 된다. 그러니 하나의 몸이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상황에 내던져지는 일은, 열성적인 암기의 과정으로 단숨에 극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사회의 체제와 질서는 이를 구축하기 위해 이분법적, 대립적 태도로 세상을 분리했고, 유지하기 위해 그 태도를 고수해 왔다. 그리고 교류와 친선, 배움 등의 우호적이거나 사회적 목적으로 이미 분리된 문화, 의미와 가치, 대상들을 대칭적 사고로 교환해 왔다. 이러한 교환의 과정에서 언어는 거의 유일한 도구이자 주요 대상으로 무엇보다도 먼저, 멀리, 다양한 갈래로 전달되고 전이, 전도되어 왔다. 그러나 썩 예사롭게 들리는 이 교환에 대해 앞서 이야기한 ‘언어와 몸의 각별한 사이’를 상기하면서 다시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 개인의 고유성은 이분법적 또는 대칭적으로 교환될 수 있는 것일까? 

 

모국어가 완전히 성숙하기 전 다른 언어로 이전해야 하는 사건을 거듭 겪어낸 조은영에게 언어는 낯선 환경에서 살아내기 위해 가장 빠르게 습득해야하는 도구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새로운 언어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삶이나 문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오기보다는 권위적이거나 강압적으로 주입되는 정보였을 것이다. 이렇게 마주한 낯선 언어가 정보와 도구의 차원을 넘어 ‘진정한 언어’가 될 때까지, 한동안 살아가는 몸과 사용하는 언어는 어긋난 채로 공생하는 곤경에 처해지기 마련이다. 조은영의 이러한 난처한 처지는 작업의 주요한 근거가 되어 번역의 불완전성과 한계 또는 언어의 파괴적 마찰을 드러내고, 언어가 쓰여온 기성의 방식이나 고정된 의미에 포섭되는 것을 거부하며 오히려 이를 해체하고 새롭게 조합하려는 시도에 천착해 왔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도로 다다르고자 하는 것은 교환의 수단으로서의 언어가 아닌, 언어의 본질 그 자체, 언어의 주인인 고유한 몸과 그사이의 관계, 언어와 언어 사이 혹은 그 주변부에서 공명하며 언어가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개인의 기억, 시간, 경험, 정서의 알아차림을 향한 방향이다. 

 

그의 작업에는 중층적 구조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하나의 정의로만 이해될 수 없는/이해되어서는 안 되는 언어의 특성을 시각화하기 위한 형식이자 과정으로 이해되며, 조은영은 겹/겹침을 드러내기 위해 물리적 직조의 형식을 입양하고 이를 통해 한 겹, 한 가닥 개별 층위/요소의 고유성은 유지되지만, 거듭되는 교차의 과정으로 결국 의미가 가려지거나 해체되는 형국을 ‘동시적’으로 보여준다(<The Old Men Gave a Hollow Smile>(2019~2020), <Transtemporal Reaction>(2019~2020)). 여기서 담지하고 있는 ‘동시성’은 어떤 것도 특권시하지 않고, 또 다른 통일성으로 포섭하려 시도하지 않으며 나아가 작가(화자) 자신의 구체적 형태나 위치마저 구성하지 않음으로써 획득되는 특성이다. 조은영은 멀리 떨어진 몸과 말들을 잇고, 시간과 공간을 잇고, 복수의 화자와 관객을 뒤섞어 모두 존재하게 하고 발화하게 함으로써 동시성에 다가간다. 2019년 작업 <On méMallar>에서 조은영은 1897년 쓰인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의 시 'Un coup de dés jamais n'abolira le hasard'를 오마주하며 언어의 해방을 꾀한 마르셀 브로타에스(Marcel Broodthaers) 1969년의 시도를 다시 가져와 세 개의 다른 시공간을 엮어낸다. 반사되는 재질의 재료로 벽에 덧입혀진 텍스트와 이미지는 현장에서 찢기고 뜯겨 나가 읽을 수 없는 글로 벽에 남거나 파편화되고 구겨진 채 바닥에 흩어지는데, 이는 마치 파괴의 순간과 흔적을 전시하는 듯하지만, 오히려 훼손의 과정으로 인해 공간 전체로 더 멀리 넓게 흩어진 글과 이미지는 관객의 움직임과 반사 빛, 공기의 흐름으로 재편되고 재해석될 수 있는 유동적이며 유연한 상태가 된다. 그러니 조은영에게 해체는 소멸이 아니라 상호적, 비대칭적, 비선형적으로 배열되고 확장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그의 몸과 언어가 처했던 연쇄적 훼손의 경험은 지독하게 난처하고 고달팠을 수 있으나, 기존의 이분법적 사고로 관념화 되거나 배제된 것들의 존재와 그사이의 차이를 알아차리게 된 경위, 언어의 전도가 체화되는 경로였을 지도 모른다. 전도는 보완성이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훨씬 더 깊은 정체성을 표현할 수도 있다. 

 

여러 번의 이주와 그로 인한 언어의 어긋남을 견뎌내야 했던 조은영은 자신의 고유한 몸과 언어, 그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 끈질긴 질문은 8개의 오디오 다큐멘터리 작업 〈Vignette〉(2024~)로 이어졌다. 〈Vignette〉에는 세 여성의 서사와 현재, 과거, 미래가 비선형적으로 혼재되어 있다. 평생 우연이라도 마주치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먼 지역에서 완벽히 다른 언어를 쓰며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두 여성의 이야기는, 그 두 장소 모두에 살고 두 언어를 동시에 사용하지만 다른 시대를 사는 조은영을 통해 수집, 기록되고, 번역되고 해체되었다. 조은영은 한 때는 가까이에서 한 때는 꽤 멀리서 그의 삶의 주요한 시간과 기억을 공유한 두 여인의 이야기를 모으고, 그 사이사이 자신의 서사를 삽입하고 재조합했고 그의 목소리로 읊었다. 일인칭 시점이지만 주어인 ‘나’가 생략된 문장, 문맥의 상호성이 사라진 문장, 과거를 회상하지만 미래 시제로 전복된 문장, 그리고 현재를 살고 있는 한 사람의 목소리로 읊어지는 문장. 편협한 언어로 규정되어 버린 기존의 형식, 개념, 관념에서 해방되고, 훼손된 개인의 정체성을 유동적이며 영원한 것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문장이다. 이 문장들은 공백과 부재를 통해 발화한다. 그 누구에게도 수렴되지 않으나 동시에 모두가 주인인 문장으로 현재의 몸이 과거로 하여금 미래를 말하게 하며 불리지 못하고 설명되지 못한 고유한 몸과 언어를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다. 

 

글_장혜정

Senior Curator at Doosan Art Center